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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날짜
싱가포르 11-01-11

위치 : 동남아

경위도 : 동경 103° 48", 북위 1° 22"

면적 : 692.7㎢ 

해안선 : 193km

시간대 : UTC+8 

종족구성 : 중국인 (76.8%), 말레이인 (13.9%), 인도인 (7.9%) 

공용어 : 말레이어, 중국어, 영어, 타밀어 

종교 : 불교 (42.5%), 이슬람교 (14.9%), 도교 (8.5%), 힌두교 (4%), 로마가톨릭 (4.8%), 그외 그리스도교 (9.8%)

국가원수 : 나단 (S. R. NATHAN) 대통령(2005.08.17 재임, 임기 6년)

국제전화 : +65

정체 : 공화제

통화 : 싱가포르달러(S$)

인터넷도매인 : .sg

홈페이지 : http://www.gov.sg/ 

인구 : 4,608,167 명(2008년 기준)

평균수명 : 81.89 세(2008년 기준) 

출산율 : 1.08 명(2008년 기준)

1인당GDP : 37,293 $(2009년 기준)

실업률 : 2.1 %(2007년 기준) 

수출규모 : 4,506 억$(2007년 기준

수입규모 : 3,960 억$(2007년 기준) 

인구밀도 : 6,652 명/㎢(2008년 기준)

정식국명은 싱가포르 공화국(Republic of Singapore)이며 1819년 영국이 무역 거점으로 개발한 도시였다. 1963년 현재의 말레이시아에 포함되었다가 1965년 말라야 연방에서 탈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시가지는 섬의 남부를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19세기 초 건설 당시 유럽인·인도인·말레이인 등 종족별 주거지로 나뉘어 그 영향이 아직도 남아 있다. 해상 동서교통의 중요 지점에 자리잡고 있어 자유무역항으로 번창하였다.

말레이 반도 남쪽 끝에서 떨어져 위치해 있고, 싱가포르 섬과 60여 개의 작은 섬들로 이루어졌다. 수도는 싱가포르이다. 국민의 3/4 정도가 중국계이고, 말레이계와 인도계가 나머지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공용어는 영어·중국어(만다린)·말레이어·타밀어이다. 국민들의 종교는 불교·이슬람교·그리스도교·도교·힌두교로 다양하다. 화폐 단위는 싱가포르달러(Singapore dollar/S$)이다. 면적 710㎢, 인구 4,954,000(2009 추계). 섬의 2/3 가까이가 해발 15m 미만의 낮은 언덕으로 되어 있다. 날씨는 덥고 습한 기후이다. 영토의 2%만이 경작 가능한 땅이지만, 경작지의 생산성은 매우 높다. 경제는 주로 국제무역과 국제금융에 바탕을 둔 시장 경제가 중심을 이룬다. 100개가 넘는 상업 은행들이 있는데, 대부분이 외국계 은행이다. 아시아 달러 시장의 본사들이 여기에 있다.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가장 큰 항구 가운데 하나이면서, 세계의 주요 정유국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제조업이 GDP의 1/4 이상을 차지하며 전자장비가 주요 생산품이다.싱가포르는 단원제를 채택하고 있는 공화국이다. 국가원수는 대통령이고 정부수반은 총리이다. 오랫동안 어부들과 해적들이 살았으며, 14세기까지 수마트라인들의 슈리비자야 제국의 전초 기지 역할을 했다. 14세기에 자바의 마자파히트 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뒤이어 시암의 아유타야 제국의 손으로 넘어갔다. 15세기에는 말라카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16세기 포르투갈인들이 이 지역을 통치했고, 뒤이어 17세기에는 네덜란드인들의 지배를 받았다. 1819년 영국의 동인도회사로 넘겨져 해협식민지(말레이 반도의 남부 말라카 해협에 면한 피낭·말라카·싱가포르와 부속 섬들로 이루어진 구영국령 식민지)의 일부가 되면서, 동남아시아에서 영국 식민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일본인들이 섬을 점령(1942~45)하여 지배했다. 1946년 영국의 직할식민지가 되었다. 1959년 내부적으로 완전한 자치권을 얻었고, 1963년 말레이시아의 일부가 되었다가 1965년 주권국가로 독립했다.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ASEAN)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독립 이후 30년 동안 국내 및 국제 정치무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은 초대 총리인 리콴유(李光耀)이다.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 내 경제 강국이 되었다

“비자정보”

싱가포르와는 3개월 무비자 협정이 체결되어 있으나 입국시에는 통상 30일간의 체류비자를 부여한다. 30일 이상 체류할 경우에는 이민국(핫라인:T.1800 391 6400)으로부터 체류기간을 연장받아야 한다.

“대중교통”

- 지하철(Mass Rapid Transit)싱가포르 지하철은 MRT라고 불리는데 동서, 남북행의 2개 노선으로 구분된다. 동서선과 남북선을 환승할 수 있는 역은 시티 홀(City Hall)과 래플스하우스(Raffles House)이다. 주의할 점은 역사 내에서 담배를 피거나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점이다.- 버스싱가포르는 버스노선이 잘 갖추어져 있고, 가격도 저렴하여 매우 편리하다. 그러나 차제에 노선 번호가 없고, 정류장에 대한 안내 방송을 해주지 않으므로 '버스 가이드' 책자를 구입해야 한다. 버스요금을 운행하는 방식이 한국과 많이 틀린데, 균일요금을 내는 노선도 있고, 목적지에 따라 가격이 변동되는 버스가 있다. 또한, 에어컨의 유무에 따라서도 가격이 달라진다. 승차시에 버스 운전사에게 목적지를 말하면 그에 한하는 요금을 징수한다. 잔돈을 거슬러 주지 않으므로 미리 준비해야 한다.- 택시미터제가 확립되어 있고, 한국과 비교해 요금도 저렴한 편이므로 이용할 만하다. 시내의 중앙업무지구(CBD)에 들어갈 때는 추가세를 지급해야 하므로 유의해야 한다.

- 철도 싱가포르는 도시국가 이므로 싱가포르 국내만을 운행하는 기차는 없고 국경넘어 말레이시아를 연결하는 기차가 있다.

“공항정보”

싱가포르공항(창기국제공항)은 시내에서 20Km 정도 떨어져 있다. 공항과 시내를 연결하는 셔틀버스인 맥시캡(MAXICAB)이 운행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싱가포르공항까지 운행되는 항공편은 많다.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한공에서 직항노선을 운행하고 있으며, 시간은 6시간에서 6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이밖에도 홍콩이나 도쿄를 경유하는 항공편이 있다.

“입국정보”

술과 담배, 마약류를 제외한 물품(카메라·시계·전자제품·화장품·보석류·예술품 등)은 비과세품으로 반입이 자유롭다. 술과 담배는 과세품으로서 입국시 세금을 내고 반입해야 하나, 위스키 1병, 포도주 1명, 맥주 1병까지 면세 반입이 허용(말레이시아로부터의 여행객은 제외)된다. 마약류, 권총모양의 담배 라이터, 음란 출판물 등과 검은 금지 품목이므로 반입할 수 없다. 특히, 마약을 반입하다가 적발되는 경우에는 사형에 처한다.

"여행 Tip"

싱가포르는 깨끗한 거리만큼이나 강력한 규제가 많은 국가이다. 싱가포르는 "Clean Green" 정책을 표방하고 있어서 거리에서 껌이나, 담배꽁초 등을 함부로 버리거나 침을 뱉는 경우 상당한 액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전압“

보통 220~240V이고 전류는 50Hz이다. 플러그는 3핀 방식인데 110V 플러그처럼 생겼으므로 유의해야 한다.

“전화”

대부분의 쇼핑센터와 MRT역 전화카드,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공중전화가 있다.싱가포르에서 한국으로 전화를 하려면, 001 + 국가번호 82 + 0을 제외한 지역번호 + 상대방 전화번호를 누르면 된다.

“세금환불”

세금 환급은 'TAX REFUND' 또는 'TAX FREE SHOPPING'이라고 표시되어 있는 상점에서 상품을 구입하였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TAX REFUND 상점에서 S$300 이상 상품을 구입한 경우 상점에서 발행해 주는 GST Claims Form을 가지고 출국시 공항의 GST Refund Counter에 가서 확인을 받아, 이를 물품 구입시 상점에서 주는 주소와 우표가 붙어 있는 봉투에 넣어 공항 우체통에 넣으면 나중에 물품 구입 상점에서 GST 환급액을 우송해준다.

TAX FREE SHOPPING 상점의 경우는 한 상점에서 S$100 이상을 구입하거나, 연쇄점의 경우에는 여러 상점에서 구입한 금액이 합계 S$300 이상일 때, the Global Refund Cheque를 발행해 주며 출국시 이것을 GST Refund Counter에서 확인을 받은 후 the Cash Refund Office에 가지고 가면 현금으로 지급해 준다.

“화장실”

싱가포르의 공중화장실은 매우 깨끗하며, 시민들이 공중도덕도 잘 지키기 때문에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을 것이다. 단지, 화장실을 사용한 후에 물을 내리지 않으면 상당한 금액의 벌금을 내야 한다.

“쇼핑”

- 바티크세련되고 현대적인 무늬의 싱가포르의 바티크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바티크도 구입할 수 있다. 대부분이 수공예 제품이며 예술적인 가치도 높다.- 퓨터(주석제품)주석 97%, 구리와 안티몬 3%의 합금으로 만드는 퓨터 제품은 원래 말레이시아의 특산품이지만, 싱가포르에서도 구입할 수 있다. 컵, 맥주잔, 꽃병 등 다양한 제품이 만들어진다. -보석류금, 은, 비취, 다이아몬드 등의 보석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많이 생산되는 독특한 보석들이 많다. 면세이기 때문에 가격도 한국에 비해서 훨씬 저렴하다.  - 카펫여러 산지에서 들여온 질 좋은 카펫을 살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페르시아 융단이다. 산지에 따라 소재와 제작방법이 틀리므로 좋은 제품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조언을 얻는 것이 좋다. 

“음식”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싱가포르에서는 아시아 여러 국가들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 인도 요리싱가포르에서는 인도의 전통요리를 맛볼 수 있다. 탄두리 치킨은 탄두리라는 인도 전통화덕에 양념한 구운 닭요리이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먹는 카레와는 다른 전통 카레를 맛볼 수도 있을 것이다. - 말레이시아 요리말레이시아는 회교국가이기 때문에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요리의 주재료가 되는 것은 해산물과 닭고기 등이고 담백하면서도 매콤하여 한국인들의 입맛에도 잘 맞는 편이다. 대표적인 것이 나시고렝과 사테인데, 나시고렝은 우리나라의 볶음밥과 같은 것이고, 사테는 양, 닭고기를 꼬치구이한 것을 땅콩 소스와 곁들여 먹는 것이다.- 논야 요리페나라칸 요리라고도 하는데 중국인과 말레이 토착민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문화의 요리이다. 락사와 미사암이 대표적인 요리인데 미사암은 쌀국수이고, 락사는 코코넛 우유를 이용한 국수요리이다.

“숙박”

싱가포르에는 세계적인 규모의 호텔들이 많다. 그에 비해 저렴한 모텔이나 유스호스텔의 수는 적은 편이다. 싼 가격의 중급호텔이나 모텔들이 있으나 평판이 안 좋은 곳이 많고, 시간단위로 요금을 받는 곳이 많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역사”

3세기경 중국 왕실의 기록에 의하면 싱가포르를 '반도 끝의 섬'이라는 의미의 파라주(婆罗洲, Pu Luo Chung)라고 하였는데 이는 말레이어플라우 우종(Pulau Ujong: 섬 끝의 땅)에서 그 음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13세기 스리위자야왕국의 뜨리부아나(Tri Buana, 또는 Sang Nila Utama) 왕자가 현재 싱가포르에 표류했을 때 사자를 목격하고 싱가뿌라(Singapura: 산스크리트어로 사자의 도시)라고 명명한 것이 싱가포르 국명의 유래이다. 1330년 경 중국인 여행가 왕다유안(Wang Dayuan, 网大圓)은 소수의 중국인들이 거주하며, 해적들이 지나가는 선박들에게 통행세를 징수하는 싱가포르 내 말레이인들의 정착촌인 단마씨(Dan Ma Xi, 单马锡)를 여행했다. 1365년 자바문헌 나가라끄레따가마(Nagarakretagama)에 처음으로 싱가포르를 '떼마쎅(Teamasek: 항구도시)'이라고 기록하였고, 14세기 후반부터 싱가뿌라라는 표현이 통칭적으로 사용되었다. 1390년대에는 마자삐힛 왕조가 멸망하자 빠라메스와라(Parameswara) 왕자가 싱가포르에서 여생을 보냈다. 1511년 포르투갈말라카를 점령하자 말레이 제독이 싱가포르로 도망한 후 조호르 라마(Johor Lama)에 새로운 수도를 세웠으나 1587년 포르투갈에 의해 다시 멸망하였다. 1613년 포르투갈은 관헌이 있는 싱가포르를 불태워 싱가포르에 관련된 모든 자료와 기록이 소실되었다. 19세기 초까지 싱가포르는 네덜란드의 영향 하에 있다가 1819년 1월 영국래플스(Sir Thomas Stamford Raffles)가 조호르 왕국과 조약을 체결하고 싱가포르의 개발을 착수하였다. 1823년 6월 7일, 래플스는 매달 2,000달러 이상의 배상금을 지불하기로 약속하고 조호르왕국의 술탄 거주지역과 떼멩공(Temenggong)을 제외하고 싱가포르 전역을 영국동인도회사에 영구적으로 할양하는 조약을 성립시켰다. 1826년 싱가포르는 말라카와 뻬낭에 흡수되어 동인도회사 지배 하의 해협식민지로 편입되었고, 1867년 싱가포르의 관할권이 영국 식민지청으로 이전되면서 본격적인 식민지시대가 개막되었다.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싱가포르는 일본에 의해 점령당하였으나 일본의 패망으로 1946년 영국의 직할 식민지가 되었다. 영국이 싱가포르를 재점령하였을 때 싱가포르 국민들은 영국에 대한 신뢰감 보다는 국민적 자각에서 발아한 민족주의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따라서 영국은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가 단계적으로 자립정부를 구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형태의 식민정책으로 전환하였다. 1953년 말라야공산당의 위협이 다소 누그러지자 식민 정부는 조지 랜들(Sir George Rendel)을 중심으로 한 자립정부 구성을 약속했다. 자립정부는 총 32석 중 25석을 국민의 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입법의회와 총리, 각료들이 존재하는 행정부를 갖춘 의원내각제로 구성되었다. 영국 식민정부는 국내 안보나 외교업무, 입법부에 대한 거부권을 유지하였다. 1963년 9월 16일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연방의 구성원으로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그러나 채 2년도 못가서 싱가포르의 정치인들이 비말레이계의 단결과 지지를 호소했다는 이유로 말레이시아연방으로부터 추방 아닌 추방을 당하여 1965년 8월 9일 독립하였다. 세계 언론들은 싱가포르의 독립보다 작은 섬나라의 생존 자체가 어려울 것 같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앞세웠다. 국민의 대부분이 무단정착촌에 거주하는 상황이었고, 제대로 된 교육도 실시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실업률도 10~12%에 달하였다. 무엇보다도 좁은 국토와 부족한 천연자원으로 인해 전통적으로 고정 수입원이 없는 상황이었고, 유일한 수입원인 중계무역항은 19세기 이래로 개발이 미진하여 더 이상의 물동량을 소화할 수 없었다. 정부는 경제성장에 총력을 기울였다. 주롱(Jurong) 지역에 산업단지를 건설하고, 싱가포르에 투자하는 모든 외국기업과 투자자들에게 5~10년간 법인세를 면제해 주는 텍스 홀리데이(tax holiday)를 실시하였다. 한편 식민당국이 약탈을 행하는 추출(抽出)무역에서 가공무역으로 산업구조를 전환하기 위해 필요한 숙련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영어를 필수 언어로 채택하여 공교육이나 공기업에서 상용화 되도록 하였다. 종족간의 갈등을 완화시키기 위해 영어와 함께 국가이데올로기로서 ‘국가애’(national fraternity, 國家愛)를 학교에서 교육 하였다. 주택부족 문제 역시 주택개발공사(Housing Development Board)가 주도한 공공주택 프로그램의 성공으로 국민의 90% 정도가 주택문제를 해결했다.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룩한 리콴유 총리는 1990년 11월 32년간의 임기를 마감하고 총리직을 고촉동(Goh Chok Tong, 吳作東)에게 이양하였다. 리콴유는 선임장관(senior minister)을 거쳐 현재 스승장관(mentor minister)에 임명되어 있기 때문에 정계에서 완전히 은퇴한 것은 아니다. 2004년 8월 12일, 리콴유의 장남인 리센룽(Lee Hsien Loong, 李显龙)이 싱가포르의 3대 총리이자 재정장관으로 임명되었다. 

“경제.산업”

1인당 GDP : 3만 729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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